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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기-박문자 : 그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첫 문을 여는 것이었다

1.산골캠프가 아닌 귀농 2009년 12월, 이때가 바로 내가 귀농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바로 그 날이었다. 내가 그동안 키워온 자식들은 과장을 조금 더하여 그간 손에 흙 한번 제대로 묻히지도 않고 곱디곱게 자라왔다. 그런 아이들에게 도심을 벗어나서 지방에 있는 산골짜기로 이사를 가자고 한다면 아마 백이면 백 어린애들이지만 어린애들처럼 입이 삐죽 튀어나오고 하는 일마다 거드름을 피울 것이 분명했다고 생각을 했다. 어린 나이에 친구들과 한창 뛰어놀고 하고 싶은 것들 성취하면서 지내고 싶어하는 아이들인데 산골에 내려가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는커녕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나 제대로 할 지 걱정이었다. 조심스레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말을 건넨후, 아이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많아봤자 고작 20살, 막내는 이제 중학교에 입학을 하는 나이인데 나를 그리고 내 남편을 이해하는 것처럼 겉으로 굉장히 가고 싶어했던 것처럼 내 말에 동의해 주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면서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결코 2박3일 단기간 산골 캠프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말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그저 좋단다. 그렇게 가족들의 동의를 받고 귀농을 하게 되는데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들의 믿음만 확실하다면 그 다음에 있는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큰 오산이었다. 2.순조롭지만은 않았던 귀농 일이 순전히 잘 진행 될 줄 알았던 내 ‘일’은 여기저기서 밑 빠진 독에 물 채우듯 계속 쏟아져 내려왔다. 아이들 학교 전학문제, 내 농장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이 너무 쉽게 귀농을 생각했던 나에게 큰 좌절을 안겨주었다. 너무 추운 날 아침에 일어나서 씻으로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물이 얼어서 나오지 않은 적도 있는데, 내 화장기 없는 모습을 일하는 인부들이 보고 피식 웃음이라도 날까봐 앞이 컴컴하고 하얘졌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입에서는 습관처럼 “이놈의 촌구석은 왜 이모양이야.” 하지만 나중에는 이놈의 촌구석이 정말 지금의 행복한 나를 만들어주는 촌구석이 될 줄 누가 알겠냐만은... 3.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 농장 일이 시작되었는데도 여전히 연일이 너무 많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농장의 입장에서 보면 필수였으니 일을 놓을 수도 그렇다고 잡기에도 너무 벅찼다. 정말 그 당시에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더왔다 갔다 했지만 그 때마다 내 남편이 힘이 되어준 덕분에 하루하루를 견뎌내었다. 남편은 주로 남자들이 남성미를 뽐 낼 수 있는 중노동의 일을 떠맡았고, 나는 여자들이 여성미를 뽐낼 수 있는 일명 경(經)노동인 작업일지를 쓰거나 일을 열심히 해주시는 인부들에게 새참을 건넨다던지 하는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을 했었다. 그 뿐이랴, 주위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보이기 위해 농장에서 자란 버섯을 조금씩 가져다 드리면서 맛있게 드시라고 광고도 하고, 일하는 사람들과의 마찰이 생길 때마다 재치 있는 입담으로 악한 상황을 부드럽게 풀기도 했었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지만 그 때 내가 아니었다면 남편은 그 사람들에게 상황을 풀기 보다는 으름장을 놓아서 더욱 악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일을 하면서 가장 기쁜 것 중 하나가 바로 새참 먹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루는 정성스레 요리를 해놓았다고 생각하고 잠시 눈을 붙였는데 아뿔싸! 타는 냄새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부엌은 뿌연 연기로 가득차고 멀리서 아스라이 보이는 그것은 사람들 오기 전에 요기나 하려고 불 위에 올려두었던 누룽지를 깜박하고 아수라장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무생각이 나지 않았다. 액션영화에 나올법한 속도로 가스불을 끄고 집안에 있는 창문이라는 창문을 다 열었다. 그 추운 한겨울에 창문을 다 열고 연기가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한 주부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놈의 촌구석 때문에...”라는 말이 또 나왔다. 여기까지만 읽어보신 분들은 지금 내가 작성한 이 글이 귀농의 장점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귀농을 해서 후회만 한다는 내용인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가지는 일부분의 독자는 마치 난생 처음 등산을 했더니 발목이 삐고 무릎이 까졌다는 얘기만 듣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부터 등산의 재미가 솔솔 나올텐데 급하다고 김칫국부터 마시고 돌아서면 너무 속상하다. 4.건강한 놀이터, 꿈터가 되어준 곳 아이들이 건강해졌다. 너무 뻔하고 당연한 얘기일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정말 건강해졌다.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졌지만 정신적으로도 충분히 그러했다. 맨날 방과 후에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던 막내아들도 산을 보는 법을 배웠고, 가족들이 저녁식사를 한 후에 다 같이 밖으로 나와서 밤하늘을 보면서 도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신기하지 않지만 신기한 그런 형용을 뿜었다. 마치 놀이동산에 가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놀이동산을 처음보고 순수하게 신기해 하는 그런 반응이었다. 그 곳 사람들에게는 탐탁지 않은 것인데 말이다. 도시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지만 산에서 그리고 들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다. 책으로는 다 배우지 못하는 자연, 그 자연이 아들에게 얼마나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고, 밥그릇에 쌀 한 톨 한 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깨닫게 된다. 더 나아가 산에 사는 곤충들을 보면서 살생유택(殺生有擇)이라는 글자로 배운 글귀를 몸소 깨닫게된다. 이웃에 사는 마을 주민들에게도 인사를 꾸벅하면서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정말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고, 도심에서는 바로 옆집에도 누가 사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상황이 도리어 의문이 되게끔 자아를 만들어 낸다. 도피 속에서 오는 이기심의 극단의 합리화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명백한 사실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정말 국영수보다 그 보다 먼저 배워야 할 공부지 않은가 생각한다. 5. 행복의 문이 되어준 귀농 행복함이라는 단어의 뜻을 국어사전을 펼치지 않고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물질만능주의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그저 돈이 많고, 그러하므로써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는 그런 생활을 꿈꾸며 살고 있고 나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지난 세월동안 정말 내가 행복하다고 느낀 적을 적으라면 A4 용지 한 장 분량을 쓸수 있을 정도로 많았을까. 그것 또한 아니었다. 오직 돈을 보고 살아온 나머지 주위의 사사로운 것들을 쳐다보고 느끼고 감사해야할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아니, 잊어버리기 보다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표현하는게 더 옳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귀농을 하면서부터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서서히 물질만능주의의 함정 속에 빠지기 보다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새벽에 잠이 깼는데 너무 고요했다. 도심에서 들리던 아파트 밖에 불량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 차의 경적소리, 옆집 TV소리, 부부싸움 소리 등의 새벽이 아니라 정말 그 어떤 말로도 형용을 할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남편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는데 눈물이 흘렀다. 여기서 도저히 지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던 나인데, 어느새 도심의 나와 비교를 해보면서 지금의 내가 더 행복하다는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도심의 아침에서는 일찍 일어나도 항상 몸이 지끈 거렸다. 또 똑같은 수레바퀴를 굴려야 한다는 생각에 진저리가 났지만 귀농 속의 나는 일찍 일어났을 때 지저귀는 새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먼저 찾았다. 요즘은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기 위해서 라디오 알람을 한다고들 하지 않는가. 나는 그럴 필요도 없이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어김없이 산새들이 아름다운 곡조를 읊조리며 나를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이야기가 하나 있다. 정말 나에게 있어서 너무 가슴 조렸던 일인 동시에 내 가슴의 앙금을 말끔하게 씻어준 이야기다. 때는 3월이었다.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 끝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날인데 하루는 저물어 버려서 밥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어디로 들어가는지 깨작거리며 먹었던 날인데, 이 답답한 마음을 자연을 통해 풀고자 혼자 현관 밖을 나섰다. 한참 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는데 멀리 우리 농장에서 낯선 물체가 어슬렁어슬렁 거렸다. 처음에는 산짐승인가 생각하고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걸어다니는 폼이 사람임에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이 시간에 농장에 있을 사람도 없다는 생각에 너무 겁이 났다. 내가 애써 애지중지 키워 놓았던 버섯을 사람이 활동하지 않는 밤에 훔쳐가는 사람이 바로 우리 농장에 나타났다니 가슴이 덜컹거려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늘은 왜 나에게 이런 시험에 들게해서 내 마음을 속 썩이는지 정말 찾아가서 묻고 싶었지만 그럴 여지가 없었다. 검은 물체가 버섯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미친 사람처렴 남편을 부를 생각도 안하고 무조건 쫓아갔다. 물론 쫓아가면서도 너무 무서웠다. 가라고 해서 그냥 갈 도둑이라면 요즘 세상에 ‘각박하다’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각박한’ 세상에서 가라고 해서 그냥 갈 도둑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더욱 두려웠지만 내가 그동안 닦아놓았던 귀농의 행복과 안정감에 먹칠을 할 그들을 쫓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성립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내 눈에서 느껴지는 물질이 밖에 내리는 빗물인지 안도감에 젖은 내 눈물인지 분간이 안갈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우리 농장 직원들이었다. 직원들이라고 해서 버섯을 훔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내가 안도의 눈물을 흘린 것은 직원들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고 난 후였다. 그 날 다 하지 못한 일들을 직원원들은 나 몰래 자기들끼리 일을 끝내고자, 우리 농장을 위해서 그렇게 최선을 다해주는 모습을 보니, 나는 내가 정말 못났고, 한편으로는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느꼈다. 도심에서는 거의 꿈조차 꾸지 못할 일들이 나에게 찾아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낱 나의 의심으로 직원들을 도둑놈으로 생각했지만 그보다 시골에서의사람의 온기, 정이라는 것을 직접 느꼈기 때문이다. 6. ‘정과 인심’의 공동체 그 밖에도 우리 버섯을 가져가신 어르신들께서 고맙다며 주시는 된장이며 고추장이며 각종 맛있는 음식들을 챙겨줄 때면 이웃 간의 정이라는 것이 이토록 따뜻한 것인지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 모습들을 하나하나 지켜보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사람과 사람사이에 의심이 먼저 오가는 것 보다 믿음이 먼저 생기게 하는 것을 가르쳐 주게 되니, 이것은 일석백조(一石白鳥)였다. 아니 백보다 더한 것을 얻었으니 이것을 어떤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 7. 우리에게 열려진 행복의 문 아이들은 인근 시내의 학교로 모두 전학을 보냈지만 그곳의 다른 아이들보다는 더욱 밝고 남을 먼저 이해하는 멋진 인격체가 되어있을 것이 분명했다. 봄이 오니 꽃이 피고 내 눈은, 아니 우리들의 눈은 더욱 눈부셔졌다. 도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과장을 더한다면 이것은 마치 산에서 나온 산삼을 집에서 키워 산삼이라고 우기는 행동이라고 생각이 든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그 아름답고 원초적인 아름다움, 그것이 내가 귀농을 한 이유가 되고 행복을 느끼는 깊은 속뜻이 아닐까. 아침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개운하게 일어나서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그림 같은 모습에 황홀감이 젖고,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난 후 적막함에 동네를 이러저리 걸으면 마치 내가 신선인 양 느껴진다. 농사일을 하면서도 웃음꽃이 멎질 않으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상기되는 일조차도 나에겐 행복한 한탄에 불과하다. 하루를 감사하며 사는 일이 이토록 쉬울 줄 누가 알았을까!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였다’는 함민복 님의 시처럼, 나는 귀농의 삶 속에서 대나무와 같이 곧은 의지로 오늘도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